** 이 글의 원문은 조용호의 변화하는 세상읽기에 있습니다.

 

비즈니스모델 큐브 (Business Model Cube)는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오랜 기간의 연구개발 (R&D)를 거쳐서 나온 결과다. 그냥 원목 나무를 잘라서 바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닌 데 여기에는 몇가지 시행착오를 곁들인 이야기가 있다.

처음부터 비즈니스모델 젠 방법론 자체는 해외를 겨냥하고 준비해 온 것이다. 최근에는 국내도 사정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연구는 해외가 더 활발하다. 그리고 해외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은 방법들이 국내에 시차를 두고 들어오고 있다. 아무래도 정면으로 승부를 보려면 해외에서 인정받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는 아직도 많은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남은 숙제이다.)

Business Model Zen Cube

비즈니스모델 큐브와 비즈니스모델 젠 캔버스

비즈니스모델 젠에는 큐브(Cube) 말고도 캔버스와 같은 다른 툴킷도 제공된다. 그런데 굳이 큐브를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캔버스하면 바로 떠오르는 리더 그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관심을 끄는 방법은 낯설지만 관심을 끄는 컨셉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아직 해외에서조차 비즈니스모델에 큐브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사례는 없다. 문제는 큐브는 3차원 조형물이다. 단지 그림이나 사진이 아닌 실물 큐브가 훨씬 공감을 이끌어내기 쉬울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올해초부터 본격적으로 큐브 R&D는 시작됐다.

첫번째 풀어야 할 문제는 제작을 맡길 수 있는 업체를 찾는 것과 해외 배송 문제다. 여러 가지를 검토한 결과 세이프웨이즈(Shapeways)를 이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곳은 3D 프린터용으로 설계된 디자인 파일을 올려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알아서 제작한 후 배송까지 처리해준다. 일단 디자인만 잘 세팅해 놓으면 별다른 손이 가지 않는 플랫폼이다. 디자이너를 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다. 해외에서는 이런 류의 3D 디자인을 $40~$100 전후의 금액을 받고 해주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첫번째 만난 디자이너는 단돈 $30에 원형 디자인을 해주었다. 아래가 그런 원형 디자인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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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의 오른쪽 끝에 적힌 금액은 세이프웨이즈에서 큐브를 프린트하게 되면 나에게 청구되는 비용이다. 너비가 5cm에 불과한 정육면체를 하나 찍는 데 $90 (한화로 12만원 가량)이 든다. 엄청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단 하나만 기념품으로 찍을 생각이라면 모를까, 다른 사람들이 원할 경우 주문하기에는 턱없이 높은 금액이다.

그래서 해결방법을 세이프웨이즈에 문의해 보니 답장이 왔다. 큐브의 안쪽에도 플라스틱 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원가가 높아지는 것이니, 안쪽을 비우도록 디자인을 바꾸면 된다는 것이다. 첫번째 원형을 만들어 준 디자이너는 그새 다른 일로 바빠져서 해당 작업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메일이 와서, 또 다른 디자이너를 물색했고, 몇 번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번에는 동양인 디자이너에게 일을 맡겼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내부를 비우는 형태로 디자인을 바꾼 후, 아래 그림처럼 구멍을 한 두개 뚫어줘야 한다. 구멍이 필요한 이유는 3D 프린팅 과정에서 안쪽에 꽉 차게 들어간 재료를 마무리 과정에서 빼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디자인 변경으로 제작 비용이 28유로 ( 한화 4만원 가량)으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이정도 금액이면 일부 Business People의 Rare Item으로는 판매 가능한 금액으로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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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Model Cube (Click to view in 3D)

Business Model Cube (Click to view in 3D)

그래서 3D프린팅된 시제품을 일단 눈으로 직접 살펴봐야 겠기에 세이프웨이즈에 주문을 냈다. 주문 후 국내 배송까지 평균 2~3주가 걸린다. 배송료까지 감안하면 대략 8만원 전후의 비용이 들었다. 드디어 당도한 택배. 테이프 컷을 하기 전에 들뜬 마음으로 트위터에 먼저 사진을 올리고 막상 상자를 열었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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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팅된 제품의 해상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일부 면이 아래 사진처럼 흐릿하게 뭉그러진 상태로 온 것이다. (그 옆의 큐브는 종이로 찍어 가위로 오려 붙인 샘플이다) 문의해보니 원래는 세이프웨이즈에서 해외 발송이전에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미리 연락을 주고 배송 여부를 확인하는 데, 이번에는 실수로 그런 절차가 생략되었다고 한다. 본질적인 문제는 3D프린터의 해상도에 있었다. 아직 3D프린터가 작은 글자들을 섬세하게 표현할 정도로 해상도가 높지 않은 것이 문제다. 재료를 레진같은 고가용품으로 쓰면 가능은 하지만 천문학적으로 비용이 올라간다. 아뭏튼 한 달 가까이 기다린 것 치고는 약간 허무한 감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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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도 몇 번 디자인을 바꾸고 샘플 제작을 했지만 결론은 3D프린터에 가장 보편화된 PVC재질 소재로 섬세한 디자인의 큐브를 만드는 것은 현재 시점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마 조금 더 기술이 진화해서 중저가 소재를 3D프린팅할 때의 해상도가 높아진다면 가능할 것이다.

3D프린팅과 관련된 R&D에 디자이너 고용, 시제품 제작 등에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한 상태에서 약간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큐브에 대한 생각을 잊고 있다가 다시 알아보게 된 것이 아크릴로 만드는 방법이다. 아크릴은 입간판 등에 많이 사용하고 있고, 가볍고 가공성도 뛰어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아크릴 업체들이 모여있는 상가를 주말에 반나절동안 돌아다녀보니 만만치 않았다. 가격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아크릴로 표현하기가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이는 내가 현장에서 본 샘플들을 기준으로 한 것이기에 실제로는 다를 수 있다.) 인터넷에서 아크릴 소재로 제품을 주문제작해주는 몇 곳에도 연락을 해보았지만 한 곳 빼고는 선뜻 할 수 있다고 나서는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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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생각이 난 것이 나무다. 비즈니스모델 큐브는 비즈니스모델 젠 (Business Model Zen) 방법론을 상징하는 것이다. 젠(Zen)하면 떠오르는 것이 곧 자연일텐데, 소재를 나무로 쓸 생각을 왜 못했을까. 나중에 해외 배송 문제가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비즈니스모델의 탄생의 저자들도 초기에는 직접 해외배송까지 챙겼으니 나라고 못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쯤에는 어쩌면 3D프린터의 해상도 문제도 해결되어 있을 지..)

그래서 나무로 큐브를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오래 전 근처에 다니던 목공방부터 해서 정보를 모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위의 그림처럼 최초 시제품을 만들어보고 제작을 해주실 곳과 계약 조건 등을 합의해 나갔다. 나무는 소재도 중요한 데, 비즈니스모델 큐브는 은행나무를 사용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하드우드 (Hard Wood)로 단단하고 가공성이 좋아서 가구 제작에 많이 쓰인다. 피톤치드가 많이 나온다는 편백나무와 삼나무 소재로도 만들어 보려고 했는 데 옹이가 곳곳에 들어가 있어서 글자를 새기기에는 적당치 않다는 사장님의 조언에 따라 제외했다.

아래는 영어판, 한글판으로 두 가지 버전으로 나뉘어 제작된 비즈니스모델 큐브 시제품을 가지고 마을 공원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마 처음 생각처럼 PVC로 제작했다면 아래 사진처럼 자연과 어울리는 그림이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먼 길 돌아왔지만 그만한 보람도 있었고, 배운 바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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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모델 큐브는 원목으로 만든 큐브를 꼭 구매하지 않아도 직접 사무실이나 집에서 종이로 만들어 볼 수 있다. 아래처럼 생긴 전개도를 다운로드 받아 프린트한 후 가위로 외곽선을 오린 후 점선 부분을 접고, 회색 처리된 부분을 풀로 붙여서 10분이면 제작이 가능하다.

비즈니스모델 큐브 (Business Model Cube) 전개도


전개도 PDF로 다운로드 하기

이상으로 비즈니스모델 큐브 (Business Model Cube)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다.

ps. 물론 그 안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되어있다. 디자이너를 잘못 고용해서 생긴 일, 국내 3D 프린팅 업체에 의뢰했던 일 등등..

 

** 이 글의 원문은 조용호의 변화하는 세상읽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