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놓인 배터리는 지금까지 두 가지 용도로 이해됐습니다. 낮에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저장했다가 밤에 쓰거나, 정전이 났을 때 비상 전원으로 버티는 장치입니다. 말하자면 가정용 배터리는 “우리 집 전기 절약 장비”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조금 다른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ESS News는 2026년 7월 15일, 오사카가스와 오사카가스마케팅이 교세라의 가정용 배터리 시스템 Enerezza Plus II 판매를 시작했고, 새로 지어지는 태양광 설치 주택을 대상으로 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여기까지라면 평범한 에너지 제품 뉴스입니다. 하지만 핵심은 그 다음입니다. 두 회사는 `Sumai Denchi EX`라는 에너지 관리 서비스를 통해 각 가정의 배터리 용량을 모아 일본의 밸런싱 시장과 용량시장에 참여시키는 모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조금 낯설지만, 경영적으로는 매우 중요합니다. 집집마다 흩어진 배터리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이면, 그것은 더 이상 가전제품이 아닙니다. 전력망이 필요로 하는 순간에 충전과 방전을 조정할 수 있는 분산 자산이 됩니다. 고객은 배터리를 “소유”하지만, 기업은 그 배터리들이 만들어내는 유연성을 “운영”합니다.

앞으로 에너지 비즈니스의 질문은 “누가 더 큰 발전소를 갖고 있는가”에서 “누가 흩어진 자산을 더 잘 묶고 제어하는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집 안의 배터리가 전력회사가 되는 순간입니다.

배터리는 제품이 아니라 접속권이 된다

가정용 배터리를 한 대 파는 일은 전통적인 제조·유통 관점에서는 제품 판매입니다. 설치가 끝나고 대금이 정산되면 거래는 대체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배터리가 클라우드와 연결되고, 원격으로 충전·방전 시점을 조정할 수 있게 되면 거래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기업이 파는 것은 배터리 그 자체가 아니라 전력시장에 연결되는 접속권이 됩니다. 고객은 집에 배터리를 설치하지만, 그 배터리는 기업의 에너지 관리 시스템 안으로 들어갑니다. 개별 가정 하나의 배터리 용량은 작습니다. 하지만 수천, 수만 대가 모이면 전력망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조정 자원이 됩니다.

오사카가스 모델이 흥미로운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ESS News에 따르면 `Sumai Denchi EX`는 각 가정의 배터리 용량을 집합해 일본의 밸런싱 시장과 용량시장에 참여시키고, 고정가격 매입제도에만 의존하지 않는 수익 흐름을 만들려는 구상입니다. 보도는 일본이 2026년 4월부터 가정용 배터리 같은 household-level flexibility resource를 밸런싱 시장에 열었다고 전했습니다.

이 구조에서는 배터리 판매회사의 역할이 바뀝니다. 단순히 배터리를 설치해주는 회사가 아니라, 고객 집 안의 에너지 자산을 전력시장과 연결하는 플랫폼 사업자가 됩니다. 제품 판매 이후의 운영 능력이 사업의 본질이 됩니다.

전력망은 더 많은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

이 변화는 우연히 나온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전력망은 더 많은 유연성을 필요로 합니다. 햇빛이 강한 시간에는 전기가 남고, 저녁에는 수요가 늘어납니다. 발전소만으로 수급 균형을 맞추는 방식은 점점 복잡해집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비슷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PV Magazine은 2026년 2월, 규슈전력이 샤프에너지솔루션의 가정용 배터리를 원격 제어해 태양광 출력제어 문제를 완화하는 수요반응 실증을 시작한다고 보도했습니다. 같은 보도는 규슈 지역에서 2024 회계연도에 재생에너지 출력제어가 128일 시행됐다고 전했습니다. 태양광이 많이 깔린 지역에서는 “전기가 부족한 문제”만큼이나 “전기가 남는 문제”도 경영 변수가 된 것입니다.

PV Magazine은 2025년 11월에도 도호쿠전력이 샤프의 태양광 연계 가정용 배터리와 클라우드 기반 HEMS를 활용해 수요 측 조정력을 확보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했습니다. 고객은 별도 조작 없이 배터리 모드와 충방전이 원격 제어되고, 참여 보상은 포인트 형태로 제공됩니다.

이 사례들이 보여주는 방향은 같습니다. 전력망은 더 이상 공급자 한쪽에서만 운영되지 않습니다. 소비자의 집 안에 있는 배터리, 전기차, 태양광, 가전이 모두 전력망의 일부가 됩니다. 전기를 쓰는 고객이 동시에 전력망을 안정시키는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집합하는 회사가 시장을 만든다

분산 자산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 장비의 성능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집합 능력입니다. 배터리 한 대는 작은 장치지만, 배터리 군집은 전력시장에 팔 수 있는 유연성이 됩니다. 이때 기업은 세 가지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고객 획득 능력입니다. 배터리를 설치할 가정을 확보해야 합니다. 오사카가스가 신축 태양광 주택을 겨냥하고, 스미토모임업을 첫 주택건설 파트너로 언급한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배터리 플랫폼은 앱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실제 주택 판매·시공·설치 채널을 잡아야 확장됩니다.

둘째, 제어 능력입니다. 전력시장이 필요로 하는 시간에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방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객의 생활 패턴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전력망이 원하는 조정력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에너지 관리 소프트웨어, 예측, 원격 제어, 고객 동의 설계가 함께 필요합니다.

셋째, 신뢰 능력입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집 안의 배터리를 외부 회사가 제어하는 일입니다. 배터리 수명, 전기요금, 정전 대비, 개인정보, 보상 구조에 대한 불안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도호쿠전력 사례에서도 배터리 원격 제어가 충방전 횟수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하면서도, 열화가 절대 가속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문장은 작지만 중요합니다. 분산 자산 플랫폼은 기술보다 신뢰 계약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결국 승부는 누가 더 좋은 배터리를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고객의 집 안 자산을 불편 없이 묶고, 시장 가치로 바꾸며, 그 보상을 신뢰 가능하게 배분하느냐에서 갈립니다.

제품의 마지막 목적지는 시장이다

가정용 배터리의 비즈니스모델은 자동차 산업의 커넥티드카 변화와 닮아 있습니다. 예전의 자동차는 팔고 끝나는 제품이었지만, 지금은 데이터, 보험, 정비, 구독, 충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연결됩니다. 제품은 판매 시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는 동안 계속 새로운 사업을 낳습니다.

가정용 배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비상시에 쓸 수 있는 장비”였다면, 이제는 “평소에 시장에 참여하는 장비”가 됩니다. 고객은 여전히 자기 집 전기를 위해 배터리를 삽니다. 하지만 기업은 그 배터리의 여유 용량과 충방전 타이밍을 모아 전력시장에 제공합니다. 제품이 시장 기능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오사카가스와 교세라의 시도는 단순한 배터리 판매 확대가 아닙니다. 에너지 기업이 고객 집 안으로 들어가고, 제조사가 만든 하드웨어가 운영 플랫폼의 노드가 되며, 주택회사가 고객 획득 채널이 되는 복합 비즈니스입니다. 배터리 하나에 제조, 유통, 주택, 전력시장, 소프트웨어, 고객 보상이 한꺼번에 얽힙니다.

이런 모델은 처음에는 작아 보입니다. 하지만 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변화는 대개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미 존재하는 자산을 새롭게 묶고, 이전에는 팔 수 없던 기능을 시장에 내놓는 방식입니다.

경영자가 봐야 할 질문

집 안의 배터리가 전력회사가 된다는 말은 에너지 산업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많은 산업에서 같은 질문이 반복될 것입니다.

고객이 이미 갖고 있는 자산 중 아직 네트워크로 묶이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 자산이 혼자 있을 때는 쓸모가 작지만, 모이면 시장 가치가 생기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제품을 팔고 끝나는 회사인가, 아니면 고객이 소유한 제품을 계속 운영해 가치를 만드는 회사인가.

호텔이 빈 객실을 묶어 플랫폼이 되었고, 자동차가 호출망에 들어가 이동 서비스가 되었고, 개인 창작물이 플랫폼 안에서 미디어 자산이 됐습니다. 이제는 집 안의 배터리도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분산 자산 시대의 핵심은 소유가 아닙니다. 연결입니다. 그리고 연결의 다음 단계는 운영입니다. 흩어진 배터리를 모아 전력시장에 내보내는 회사는 배터리 회사이면서, 소프트웨어 회사이고, 에너지 회사이며, 고객 신뢰를 설계하는 서비스 회사입니다.

경영자가 이 뉴스를 봐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앞으로 경쟁력은 더 큰 자산을 직접 소유하는 데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이미 세상에 흩어져 있는 자산을 얼마나 잘 묶고, 제어하고, 수익화하느냐에서 나옵니다.

집 안의 배터리는 작습니다. 하지만 그 배터리들이 연결되는 순간, 시장은 훨씬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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